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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말하는 사람과 삼키는 사람 사이: SBS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며

Healing Layla 2025. 3. 24.

안녕하세요, 힐링라일라입니다.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자극적인 전개 없이, 따뜻한 듯 서늘하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감정선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나는 감정 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숨김없이 다 말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속으로 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리적으로는 누가 더 건강한 사람일까요?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을까요?

 

늦깎이 연주자 채송아의 조심스러운 감정

드라마의 주인공 채송아(박현빈 분)는 서령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4수를 한 끝에 같은 대학 음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한 늦깎이 4학년입니다. “채송아입니다”라고 말하면 “죄송합니다”로 들릴 만큼 부드럽고 조용한 말투를 가졌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정한 길을 밀어붙이는 강단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음대 진학을 강하게 반대했던 부모가 내건 조건인 서령대 음대 입학을 결국 이뤄낸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과외로 레슨비를 벌어가며 악바리처럼 살았음에도 여러 번 입시에 실패하고, 뒤늦게 입학해 보낸 음대 4년 동안 송아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어린 과동기들 사이에서 점점 말수가 줄고, 주눅이 든 채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큰 용기를 냈던 음대 진학 이후의 삶이 기대만큼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졸업과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 그녀는 진로와 사랑을 모두 놓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음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처음부터 지지해줬던 사람이 동윤이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송아가 동윤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러나 동윤은 절친한 친구 민성의 전 남자친구였고, 민성이 아직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송아는 끝내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못합니다. 실수로라도 마음이 드러날까봐 동윤, 민성과는 술도 피하고, '윤사장'이라고 부르며 애써 거리를 두려 합니다.

진로 문제와 짝사랑으로 마음이 복잡한 스물아홉의 여름. 송아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그 여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그리고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박준영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됩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소리 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박준영의 침묵 속 고통

박준영(김민재 분)은 2013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한 유명 피아니스트입니다. 훤칠한 외모와 다정한 성정 탓에 실력보다 외모로 주목받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 남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 그래서일까요. 그는 지금껏 자기 욕망을 제대로 드러내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어릴 적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도 어렵게 한국예중에 진학했지만, 아버지의 연이은 보증 실패로 피아노를 포기하려던 찰나, 경후문화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며 기적처럼 피아노를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기적 뒤에 감춰진 현실은 그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 장학금은 경후그룹 회장 문숙이 교통사고로 외동딸을 잃고 받은 보상금으로 조성된 것이었고, 그 외동딸의 딸, 즉 정경이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준영은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정경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우리, 친구 하자.” 그저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랐던 것입니다. 그 후로 정경을 떠올리며 치는 트로이메라이는 준영에게 하루를 여는 의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연민인지, 우정인지, 부채감인지 아니면 사랑인지를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쇼팽 콩쿠르 입상 이후 7년간 세계를 떠돌며 연주 투어를 이어갔고, 지쳐 1년의 안식년을 갖기로 하며 뉴욕에서 마지막 연주를 합니다. 그곳, 정경이 공부하던 도시. 그 날, 그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정경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하지만 그는 마음을 지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녀의 가족, 친구, 그리고 자신이 받은 도움을 떠올리며 그 사랑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트로이메라이도 더는 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런 그에게, 한 여자가 다가옵니다. 그의 트로이메라이 연주를 듣고, 그 어떤 곡보다 가슴을 울렸다고 말한 여자. 채송아였습니다.

그는 힘든 집안 사정과 심리적 부담 속에서도 피아노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이후에도 그의 마음은 늘 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후배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상황, 그리고 자신보다 더 솔직하고 감정 표현에 거리낌 없는 이들과 마주할 때마다 준영은 스스로의 감정에 더욱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상처 주는 말에 정면으로 화를 내는 대신, 그저 조용히 이렇게 말합니다. “피아노라도… 왜 제 마음대로 하면 안 되나요?” 그 말 한 마디에는 자신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깊은 체념, 그리고 감정조차 조율당하는 존재로서의 슬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바이올린과 상처,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 – 정경의 서사

정경(박지현 분)은 재계 순위 15위인 경후그룹의 외손녀이자 현 회장의 외동딸입니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줄리어드의 전설적인 교수가 픽업해 미국 유학을 가며 국제무대에 데뷔한 천재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생일,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정경은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예중에 편입, 이후 서령대 음대까지 쭉 국내에서 음악을 이어갑니다.

정경은 늘 1등이었지만, 신동이라 불리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자신이 평범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준영이 왜 그토록 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큰 욕심을 내지 않는지 답답해했습니다. “난 더 꺼내 보일 재능도 없는데, 넌 왜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거니.” 그녀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쇼팽 콩쿠르에 준영을 나가게 하고, 그의 수상에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뉴욕 독주회장에서 정경은 깨닫습니다. 박준영이 이미 자신이 다시는 발을 디딜 수 없는 세계, 그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정경은 흔들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준영의 얼굴을 보며 잠시 유치한 승리감을 느꼈지만, 곧 자신의 마음에 큰 파장이 일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진심이었다는 것도.

감정을 삼키는 사람들의 내면

이처럼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차분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깊은 외로움과 자기비난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갈등을 피하고, 상처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감정을 억누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병들어갑니다. 심리학적으로는 이를 '내현화 성향'이라고 부르며, 우울과 불안, 심한 경우에는 신체 증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을 말하는 사람들의 특성

반대로, 감정을 여과 없이 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억압된 감정이 없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스타일로 보입니다. 외부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곧바로 배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감정 조절보다는 방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때로는 '솔직함'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중심적인 말하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유형을 심리학에서는 '외현화 성향'이라고 합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감정 표현이란

그렇다면 누가 더 건강할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고, 무조건 쏟아내지도 않는 사람, 즉 감정을 조절하며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조절된 솔직함'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타인에게 어떻게 전달될지를 고려하는 태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박준영이 마지막에 채송아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며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감정의 균형을 찾아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말이 많고, 누군가는 조용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감정은 나를 위한 것이고, 표현은 타인을 위한 배려일 수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 감정의 결을 조용히 따라가며,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나 또한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말하지 못한 내 마음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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